3명 확진, 중국인 동남아 노동자 많아
“중국인과 마주쳐” 검사 요구 빗발
음압병실 갖춘 상급병원도 없어 ‘3중고’
“우리가 무너지면 시흥 뚫려” 사명감
12일 오전 시화병원 선별진료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료진, 간호사, 행정직원, 자원봉사들이 신종 코로나 격퇴를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시화병원 제공

“필리핀에 다녀왔던 젊은 여성이 지금 선별진료소를 찾아왔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 12일 정오 무렵, 경기 시흥시 시화병원 감염관리실 팀원들이 분주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의심되는 20대 여성 K씨가 선별진료소를 찾으면서다. K씨는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필리핀 보라카이를 여행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입국 당시에는 발열ㆍ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없었지만 지난 8일 발열 증상이 나타나 이날 시흥시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7일부터 중국 전역을 포함해 신종 코로나 유행국가 여행력을 가진 환자 중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을 보일 경우 의사 소견에 따라 의사환자로 분류할 것을 당부했지만 K씨를 마주한 의사는 당국의 방침에 따르지 않았다. K씨가 의사에게 필리핀 여행력을 밝혔지만, 그는 K씨가 인플루엔자 검사에서 음성반응을 보이자 해열제만 처방했다. K씨는 해열제를 복용한 후 증상이 완화됐지만 12일 아침 다시 발열과 몸살증세가 발생해 거듭 의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의사는 그제서야 K씨에게 선별진료소 방문을 권유했다. 이선화 시화병원 감염관리실 팀장(간호사)은 “개원가에서 의사환자로 분류되지 않고 선별진료소를 찾는 환자가 하루 1~2명 정도라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폐 엑스레이(X-Ray) 촬영 판독결과 폐렴증상이 보여 시화병원에서는 K씨의 검체를 채취해 시흥시 보건소에 검사를 의뢰했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음성. 하지만 만약에 K씨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 시흥시에서만 4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방역당국의 조치와 현장의 괴리를 느낄 수 있는 사례였다.

12일 오전 정해권 시화병원 내과과장이 선별진료소를 방문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화병원 제공
공단ㆍ이주민 단지, 중국인 밀집해 긴장
 

지역의 종합병원이지만 시화병원이 대학병원 못지않게 신종 코로나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병원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이곳에는 시화ㆍ반월공단은 물론 시화 이주민 거주단지가 있어 중국인과 중국동포, 동남아 국가 출신 노동자 사회가 밀집해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 및 동남아와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여기에 지난 9일 시흥시에서 일가족(25~27번 환자) 3명이 한꺼번에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지역에 상급종합병원이 없어 사실상 시화병원은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염주옥 시화병원 감염관리실장(내과 전문의)은 “인근에 상급종합병원이 없기 때문에 만일 신종 코로나가 일대에서 유행할 경우 몰려들 수많은 주민을 의료진이 선별하고, 진료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들처럼 음압병실이 있으면 의심 환자를 일반환자와 격리시킬 수 있지만 의료인력과 운영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생각할 수 없다”라며 “최대한 신속히 의심환자를 선별해 보건소로 연결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화병원은 선별진료소에 이동식 음압 장치를 설치하고, 폐 엑스레이 촬영이 가능한 이동식 건강검진 버스를 24시간 대기시키는 등 신종 코로나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의료진이 일회용 보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에서 환자를 맞는 것도 시간 단축을 위함이다. 이날 선별진료소에서 환자를 진료한 정해권 시화병원 내과과장은 “진료부터 촬영, 검체까지 신속하게 진행하려고 선별진료소 동선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12일 오전 시화병원 감염관리실 소속 간호사들이 병원 입구에서 환자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시화병원 제공
신종 코로나 음성 확인서 요구에 몸살

시화병원 의료진은 지역민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공포’ 때문에 진료에 애를 먹는다고 말한다. 이선화 팀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인과 동포들이 많다 보니 마트, 시장, 지하철 등에서 이들과 마주쳤다는 것만으로 불안하다며 검사를 해달라는 이들이 하루 15명이상 된다”라며 “이들에게 시간을 뺏겨 정작 증세가 의심되는 환자를 보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면죄부’를 받으려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은 점도 골칫거리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중국동포 B(38)씨는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가 유행해 춘제기간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회사가 신종 코로나 검사결과를 제출하라고 해 왔다”라며 “병원에서 여행력과 증상이 없어 확인서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시화병원 국제진료소의 한 관계자는 “병원에서 확인서를 발급할 수 없다고 거듭해 밝혀도 확인서 발급을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다”고 말했다.

중국인들도 신종 코로나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감기증세로 병원 내 국제진료소를 방문한 중국인 이모(41)씨는 “우리끼리도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서로 만나지 않으려 한다”라며 “신종 코로나에 감염될까 무서워 아예 직장에 가지 않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면 지역에서 중국인을 상대 하는 식당, 술집 등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마스크 확보가 어려워 애를 먹고 있다. 시화병원 관계자는 “이 지역에 사는 중국인들이 일반ㆍ보건용 마스크를 싹쓸이 해 의료진조차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지역 특성과 지역병원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시화병원 구성원들은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안혜연 시화병원 총무팀 직원은 “인력, 시설이 부족하지만 우리가 뚫리면 지역사회가 무너진다는 사명감으로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시흥=김치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