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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우리나라 섬....일본대마도 우리땅인데(편집자주)

작성일 : 2020-03-25 05:15

이석우 편백나무 대표 '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 출간

 

 
  • 웹출고시간2014.07.24 16:57:49
  • 최종수정2014.07.24 16:57:49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었습니다. 이같은 증거는 '세종실록'의 기록에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징벌을 떠나기 전, 태종대왕이 전국에 발표한 담화문 중 '대마도는 본래 우리땅 (對馬島本是我國之地)'의 구절과 '대마도는 우리나라의 말 기르던 땅(我國牧馬之地)'라는 세종의 말씀도 나옵니다"

이석우(63) 편백나무출판사 대표는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행사로 바꾸고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초 중 고의 국가교육과정에 넣어 가르치고 있어 이를 보다 못해 대마도가 우리땅이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찾아내 책을 출간했다.

진천 학성초 교장을 지내다가 퇴직한 이 대표는 "반일감정에 치우쳐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마도 영유권 주장을 펼치는 이 책을 통해 자라나는 학생들이 대일(對日)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마도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일본인들이 신성시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우리조상들의 흔적과 역사를 발견하게 된 그는 대마도가 나오는 고지도와 대마도에 있는 백제식 산성, 경상도 송씨 이야기, 신라 충신 박제상, 외교관 이예, 이종무 장군, 최익현 선생, 덕혜옹주 등의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일반 독자에 이르기까지 흥미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이어나간 '대마도는 본시 우리땅이다'는 대마도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으며 학교에서는 토론식 도서,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역사적인 인식을 바로 잡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대표는 "대마도는 조선 땅으로 경상도의 계림에 속하는 것으로 조선은 1420년 1월 23일 대마도를 경상도에 편입시켰다는 기록이 있다"며 "대마도에는 우리조상들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우리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 있던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정치기관을 설치해 백제, 신라, 가야를 지배했다는데 왜곡된 내용을 초등학교부터 역사교과서에 넣어서 가르치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대마도가 우리땅이었다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독도영토 문제는 '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는 좀 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독도수호와 대마도반환'이라는 양동작전을 펴야한다"며 "대마도 쪽에다 더 큰 소리를 지르면 독도는 저절로 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학기자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던 섬

 

 

 대마도 [大馬島] -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던 섬 (한국의 섬 - 진도군, 2015. 5. 25., 이재언)

 

 

면적 2.816km2, 해안선 길이 14.5km의 대마도는 1973년도에 197가구 1153명, 264명의 학생들이 사는 섬이었으나 현재는 73가구 116명이 살고 있고 분교생은 2명이다. 하조도와 서거차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섬이 ‘큰 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大馬島)’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섬의 최고높이는 173m이며, 대부분 100m 내외의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대마도는 하늘에서 보면 눈에 확 띌 만큼 희한하게 생긴 섬이다. 좌우로 움푹 들어가 특이한 문양처럼 보이는 섬이다. 큰 말처럼 생겼다 해서 ‘대마도’라는 지명이 붙었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보는 대마도는 말 모양이 아니라 변형된 ‘역 S자’형이다. 풍수지리상 바다에 떠 있는 형상이 말을 닮은 이유이리라.

해안은 돌출한 갑과 깊숙한 만이 연이어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편이라 해안선 길이는 섬의 크기에 비하면 큰 편이다. 모두 14.5km이다. 북쪽과 동쪽 해안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높은 해식애가 발달했으며 만입부에 약간의 갯벌이 있다.

사람들이 처음 섬에 들어온 시기는 1600년대 초기로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 허씨 일가의 후손이 들어왔고, 이웃 섬인 관매도에서 강릉 함씨 함재춘의 후손이 이곳으로 이동해오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는 1600년경에 김해 김씨가 정주하였다고도 전해진다.

대마도에는 ‘막재’ 또는 ‘말재’라 부르는 고개가 있다. 여기에서 마을이 갈라지는데, 이곳을 경계로 하여 서쪽은 ‘대막(大幕)’, 동쪽은 ‘큰 마을’이라는 뜻의 ‘대마(大馬)’가 자리잡고 있다. 대마 마을은 1구와 2구로 나뉜다. 과거 이곳에 말목장이 있었다고 하며, 1789년에는 ‘대행입리’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대마도해수욕장 전경

대마도 둘러보기

대마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이 가운데 하나인 ‘막금마을’은 한때 3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단 한 가구만 살고 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은 뚜렷하지만 집과 집 사이의 골목길은 뚜렷하지가 않았다. 그만큼 사람의 발길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마을이 들어선 이곳에서 막재까지는 비포장 도로다. 그리고 막재에서는 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이 따로 있다.

대마마을 1구, 아주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대마도 전체적으로는 70여 가구가 산다. 최고인구는 1975년 1,138명이었다. 지금은 빈집도 더러 보이고 사이사이에 밭이 있으며 돌담에 간이 슈퍼도 있다.

큰 도로로 나오니 공사중이다. 옛 보건진료소를 말끔히 페인트칠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고, 바로 옆에는 깔끔하게 만들어진 보건진료소가 있다.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움푹 들어간 지점을 메우는 일종의 매립공사를 하고 있었다.

대마마을 2구 입구에 오른쪽으로 또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식수원용 저수지 공사 현장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죽항도 외 4개 지구 도서식수원 개발사업’이라고 되어 있다. 전남의 섬들은 대부분 식수난에 허덕이고 있다. 진도권의 섬들 대부분이 빗물을 받아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지하수를 이용하기에 식수가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이곳이 대마마을 2구다. 북쪽의 대마마을 1구와 마주보는 지점이다. 여기는 방파제가 마을에서 조금 더 떨어져 있다. 마을은 안쪽에 자리잡고 있고 산길로 해서 남쪽으로 넘어가면 조그마한 모래해안이 있다. 대마도에는 마미동, 방막터 그리고 씨아시(시하도) 등 모두 세 곳의 모래밭이 있다.

대마도의 선착장은 대마 1구에서 조금 더 위쪽인 북쪽에 있다. 이곳에도 여객선이 하루에 한 번 온다. 학교는 선착장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지금은 분교로 바뀌어 학생수가 2명이지만, 과거 한때 246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이 공부하던 명실상부한 초등학교였다. 대마초등학교는 1963년에 본교로 승격했으나 1990년 3월에 다시 분교로 격하되어 조도초교에 소속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찰초소도 지금은 폐쇄되었다.

대마도 생활

지금부터 40여 년 전인 1971년도에 진도 출신인 김정호 기자가 전남일보에 ‘섬, 섬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연재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진도의 섬과 일본의 섬’ 등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 글을 쓸 당시인 1971년도의 대마도는 대마리에 97호, 막금리에 47호가 분포하여 살 만큼 섬주민의 수가 많았다 한다.

인근에 있는 조그만 섬에 비하면 큰 섬에 속하지만, 산지가 많고 천수답 8ha와 밭 64ha를 농사짓는 반농반어업의 상태라 아주 고단한 삶을 이어가기 때문에 10년 동안 이 섬에서만 53호가 육지로 떠나갔다. 이 섬의 이도율은 25%가 넘는 셈이다.

대마도는 해안선 길이가 14.5km에 달한다. 이 섬의 북서쪽에는 자연산 톳과 미역을 채취하고, 마을 앞 동남쪽에는 김양식을 하였다. 톳은 미역이나 김양식에 비하여 손질이 적게 가는 대신 일본수출이라는 판로가 보장이 되었기 때문에 수입이 안정적이었다. 1983년에 처음 톳을 양식했다고 한다.

톳과 함께 자연산 미역도 바다농사에 있어 빼놓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진도는 완도와 달리 수심이 깊고 물살이 거세서 양식이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자연산 톳과 미역이 대부분이다. 소량이지만 더 품질이 좋은 제품을 생산한다. 한여름이 되면 대마도 역시 자연산 미역을 채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다로 산으로 피서를 가는데, 대마도의 마을주민들은 모두 미역채취를 하고 건조하는 데 분주하다. 농사를 짓는 만큼이나 자연산 미역이 고수익을 내기 때문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을 한다. 여름철에는 온 섬이 미역 건조장으로 바뀐다. 널려 있는 미역에다 바다에서 금방 채취한 것들이 선착장에 쌓여 손질을 기다리기 때문에 섬 전체에 미역냄새가 물씬물씬 풍긴다.

대마도는 다른 섬보다 큰 편이고, 미역 생장을 위한 환경이 좋아서 품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자연산 미역채취로 분주한 계절이라 장마라도 질라치면 주민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울상을 짓는다. 피땀 흘려 생산한 자연산 미역은 20개 한 뭇 가격이 해마다 달라지지만 보통은 30~40만 원선이며 상품은 50~6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한겨울 바위에서 사나운 파도에 시달리면서 자라는 자연산 미역은 고가여서 일반 서민들은 사먹기가 어렵다. 이곳 섬주민들이 섬을 떠나고 싶어도 쉽게 그러지 못하는 것은 자연산 톳과 미역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톳 양식과 미역채취 다음으로 하는 업종은 멸치잡이이다. 이 섬에서만 5집에서 낭장망 어법으로 멸치를 잡아 수입을 올린다. 필자 일행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 아직은 이른 봄인지라 약간의 멸치를 잡아서 삶아 건조장에서 말리고 있었다.

대마도는 물이 부족한 섬인데 암반지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상습적으로 물가뭄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국가에서 도서지역 식수원 개발사업에 우선적으로 투자한 결과 저수지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대마도에서는 물걱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대마도의 저수지는 식수원치고는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염분은 없다고 한다.

한적한 대마도해수욕장

쑥·달래가 지천인 대마도

대마도와 인연을 맺은 지는 벌써 22년이나 되었다. 이곳을 여러 번 방문한 이유는 배를 가지고 학생들을 조도로 통학시켜주는 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2012년에 봄 이곳에 와서 별장 하나 지어 놓고 머물고 싶은 곳을 하나 발견했다. 그 이후로도 늘 대마도를 그리워하던 중 2013년 여름, 멸치가 한창 나던 시기에 다시 찾게 되었다.

재작년 이른 봄 이곳 바닷가는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조용한 대마도 바다에서 마을 분들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마을 뒤편에 있는 밭으로 가야 했다. 그것은 쑥 채취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 한 평이라도 개간하여 곡식을 심어 배고픔을 면하고자 했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힘든 밭일은 그만두고 전부 다 묵혀 버렸다.

다행히 쑥이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쑥 농사를 짓게 되었다. 다른 지역보다 남쪽이란 이점 때문에 봄이 일찍 찾아오는데다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의 향이 은은하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다른 작물처럼 따로 농약을 하거나 비료를 주거나 풀을 매는 일도 없이 잘 자라기에 쑥 농사가 인기이다. 대마도를 푸르게 만드는 것은 쑥뿐만 아니다. 달래도 지천에 널려 있다. 이곳은 산과 바다에 반찬이 가득하여 쌀만 있으면 된다.

2014년 3월에는 SBS ‘물은 생명이다’ 프로에 출연 요청을 받고 진도 가사혈도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신해7호를 타고 목포로 올라가는데 대마도를 비롯하여 소마도 모도 거차도 등지에서 실은 노란 마대 자루가 가득 보였다. 자루 안에는 쑥이 들어 있었다. 섬사람들의 일년 농사가 이 배에 실려 가는 모습에 감동되어 여러 번 사진 촬영을 했다.

하조도와 상조도의 쑥 수집상이 매일 수집하여 1일 5회 정도 운항하는 철부선을 이용해 조도의 관문인 팽목항을 통하여 육지로 반출한다. 쑥은 특성상 연약한 식물로 이틀만 지나도 생기를 잃고, 자체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검게 타버린다. 그래서 그날그날 즉시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야 상품성을 유지한다.

만약에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여객선 발이 묶이기 때문에 쑥을 채취하지 않는다. 쑥 농사는 항상 날씨에 신경을 쓰면서 해야 한다. 아직 생쑥의 통신판매는 하지 않는데, 김이나 미역과 달리 신선도 때문이다. 쑥 향기를 그대로 도시에 사는 소비자에게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그들은 쑥 농사에 여념이 없다. 조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풍 쑥은 칼륨과 나트륨을 육지 쑥보다 10배 이상 더 함유하고 있어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 대마도에서 나는 쑥은 kg당 4,000원에서 4,500원 정도라고 한다. 주요 수산물은 김과 미역, 톳, 멸치, 전복, 조기, 갈치, 고등어 등이고, 농산물은 유채, 마늘 등이 재배된다.

대마도 사람들

대마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실화인데 감동적인 스토리라 지면에 옮긴다.

1976년 대마도의 남동쪽 작은 오두막집에 ‘멍굴이 부부’라 불리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부는 대마도의 큰 마을과 작은 마을에서 각각 태어나고 자랐는데,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어릴 적부터 따돌림을 당하였다 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두 남녀는 결혼하여 섬의 외딴 곳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육지의 학교로 유학 보냈다.

이들의 삶이 재미있었던 것은, 이 부부가 수화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의사소통을 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돌멩이가 동쪽으로 향해 있으면 동쪽에 있는 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고, 바다쪽인 남쪽에 놓아두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간 것이며, 원 밖으로 나가 있으면 멀리 큰 동네를 갔다는 의미를 가짐으로써 서로의 행선지를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약속된 신호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니 부부 사이가 얼마나 좋았을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멍굴이 부부가 대마도에 살던 당시, 대부분의 낙도 선착장은 시설이 열악하여 큰 어선이나 여객선이 접안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배와 선착장을 연결하는 작은 배인 종선이 마중을 나가 승객과 짐을 받아 실어 나르고는 했다.

큰 배에서 종선으로 승객과 짐을 이동시키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승객이나 짐이 많을 때에는 금방 가라앉을 듯 아슬아슬한 운항을 해야 했다. 심지어 배가 접안하려다 침몰하여 동네사람들 여럿이 한꺼번에 죽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종선은 동네에서 운영하는 배인데 종선 운행자를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의 젊은이로 선발하였다. 선발된 종선 운영자는 다른 일보다 종선업무를 최우선 순위로 두어야 했기에, 마을에서는 적절한 생활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이 바다에 일을 나갔다가 악천후로 인해 조난을 당했을 때, 구조대장이 되어 앞장서서 구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종선 운영자가 되는 일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을 멍굴이 부부가 맡아 하니, 어느덧 말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대마도로 가는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는 상조도의 산에서 봉화연기를 올림으로써 이루어졌다. 종선 운행자는 이 신호를 기반으로 손님을 데리러 가야 했다.

신호와 기호는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말과 언어, 문자에 앞서 기반이 되는 인류의 행위였으므로 말을 할 수 없는 멍굴이 부부에게는 가장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체계였던 셈이다. 이들 부부가 섬생활을 행복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삶의 방법이자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는 방법이 신호체계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마도 관광

저수지 가까이 있는 바닷가가 아름답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수욕장인데, U자 형태로 된 아름답고 수심이 적당한 천혜의 해변이다. 섬의 남서쪽에 자리잡아 한적한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의 길이도 제법 큰 편으로 모래도 밀가루처럼 곱다. 이런 모래는 황사처럼 바람에 섞여 멀리 날아갈 만한 입자이다. 그래도 상당히 넓은 모래밭을 형성하고 있다. 모래밭 끝까지 가면 간이 선착장이 있다. 그 뒤로는 온통 갯바위 해안이다. 간이선착장 부근에 허물어진 낡은 막사 한 채가 세월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멸치를 잡아 삶고 말리던 멸막이었지만 지금은 폐쇄된 곳이다. 이 낡은 집을 리모델링하면 숙박시설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외지인에게 많이 알려진 이웃섬 관매도해수욕장 때문에 이곳으로 향하는 발길이 드문 것 같다. 한적한 곳에서 유유자적하기를 원하는 여행객이나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에게 매우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다.

대마도의 자랑거리로는 톳과 미역, 쑥 등을 들 수 있지만, 생태 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드문 섬이라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섬을 한 바퀴만 돌아보면, 자연이 선물한 해안의 지형적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연구거리를 가진 섬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대마도[大馬島] -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던 섬 (한국의 섬 - 진도군, 2015. 5. 25.,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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