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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시작이 반…“설날만큼은 부모님 옆에 ‘찰싹’ 달라붙으세요”

작성일 : 2020-01-17 23:48

 

장인선 기자

승인 2020.01.17 10:18

 


 
[인터뷰] 이진산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
치매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 모두 힘을 합쳐야하는 병이다. 완치는 어렵지만 노력에 따라 분명 좋아지는 경우도 있어 섣불리 절망해선 안 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많은 사람이 치매를 단순히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치매는 기억력저하 외에도 종류에 따라 증상이 제각각이다.

전공의 시절, 한 50대 젊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통해 치매의 또 다른 얼굴을 생생하게 경험했다는 이진산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 이것이 치매 진료와 연구의욕을 솟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현재 치매전문의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보듬고 있는 이진산 교수를 만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치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알고 보면 너무나 다양한 치매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치매는 알츠하이머병 치매와 혈관성치매다.

우선 알츠하이머병 치매는 이제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병으로 인식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치매환자의 60~70%가 여기에 해당한다.

알츠하이머병 치매는 뇌에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서 발생한다. 이 불량단백질들이 뇌 안에 너무 많이 또는 제대로 제거되지 못해 쌓이면서 뇌세포를 파괴하는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치매환자의 20~30% 정도는 혈관성치매다. 평소 멀쩡했던 사람이 뇌의 크고 작은 혈관들이 반복적으로 막히면서 뇌가 손상돼 인지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이진산 교수는 “혈관성치매도 피질하혈관성치매(나도 모르게 뇌혈관이 조금씩 막히면서 인지기능 점점 떨어짐), 전력뇌경색치매(아주 작은 뇌혈관이 막혔는데 그게 하필 기억력과 연관 있는 혈관인 경우) 등으로 다양하다”며 “뇌혈관문제를 해결하면 되지만 혈관성치매도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호전 여부는 환자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5~10%는 전두측두치매다. 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점점 망가지면서 발생한다.

진짜 치매가 아닌 가성치매도 있다. 우울증, 뇌수두증, 뇌종양 등의 질병으로 인해 인지기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가성치매는 원인질환을 교정하면 분명히 좋아질 수 있어 진짜 치매와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이진산 교수는 “치매는 종류별로 증상이 다양한 만큼 비단 기억력저하만 나타나지 않는다”며 “행동이나 성격변화 등도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치매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행동이나 성격변화도 나타나

모든 치매는 기억력저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어떤 치매는 기억력저하보다 다른 증상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일단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알츠하이머병 치매는 기억력저하가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특히 과거의 일들은 잘 기억하지만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 점심에 뭘 먹었는지 등 비교적 가장 최근에 발생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죠.”

반면 혈관성치매는 기억력저하와 함께 다른 여러 가지 변화들이 나타난다고.

“혈관성치매는 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두엽 쪽에 혈류가 떨어지면서 행동과 사고가 느려집니다. 또 전두엽의 기능 중 하나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것(전두엽 집행기능)인데 이 기능이 떨어지면서 융통성이 떨어지고 고집스러워집니다. 기억력저하도 분명히 나타나지만 행동·성격변화가 동반된다는 점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매와 차이가 있습니다.”

전두측두치매는 초기부터 성격변화가 굉장히 심하며 전두엽과 측두엽의 기능 중 어느 영역이 망가졌느냐에 따라 ▲행동변이형 ▲비유착성 실어증 ▲의미치매 등 3가지로 나뉜다.

“행동변이형은 이성적으로 판단해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전두엽이 망가지면서 참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여기에 해당하는 치매환자들은 자기 차례가 안 됐는데도 진료실 문을 여는 경우가 많답니다. 측두엽은 언어를 이해·표현하고 물체를 인지·판별하는 능력에 관여해 기억은 잘해도 말은 못 하는 비유착성실어증과 이 물건이 어떤 건지 말은 해도 그 단어에 대한 의미는 싹 잊어버리는 의미치매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건망증 vs 치매, 점점 나빠지는지에 주목!

치매는 건망증과도 많이 혼동된다. 이진산 교수는 이 둘을 구분하려면 “일단 기억력이 점점 나빠지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강조했다.

“부모님이 근래 자주 깜빡깜빡한다 싶으면 무조건 치매인 줄 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치매는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돼야합니다. 몇 개월간 부모님을 쭉 지켜봤더니 점점 기억력이 나빠지는 패턴을 보인다면 치매 상담이 필요합니다. 또 건망증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치매는 일어난 일 자체를 통째로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완치 어려워도 더 안 나빠지게 할 순 있어

안타깝게도 치매는 아직 완치가 어려운 병이다. 하지만 현재 개발된 치료방법도 여러 가지라 충분히 더 안 나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진산 교수의 말이다.

그는 절대 절망할 필요가 없다면서 ▲약물치료 ▲인지중재치료 ▲운동을 주요 치매 치료법으로 꼽았다.

먼저 약물은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개발된 치매 약물들은 증상을 완화시키면서 치매의 악화속도를 늦춰준다.

인지중재치료는 뇌를 점점 쓰게 해서 떨어진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뇌의 인지기능영역은 크게 ▲주의집중력 ▲언어기능 ▲시공간기능 ▲기억력 ▲전두엽 집행기능 등 5개로 나뉩니다. 이 중 환자의 떨어진 인지기능영역을 선택해 강화시키는 것이죠. 가령 전두엽 집행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1, 가, 2, 나’ 이런 식으로 규칙의 변화들을 세워보게 하는 훈련을 하고 언어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물체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어떤 건지 말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이러한 치료들과 더불어 이진산 교수가 꼭 해야한다고 강조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은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질병뿐 아니라 뇌의 기능을 좋게 하는 데도 값진 원동력이 된다는 것.

“실제로 운동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뇌의 껍질 두께는 다릅니다. 치매는 말 그대로 뇌의 껍질이 얇아지는 병인데 두껍다면 나쁜 영향을 받아도 얇은 사람보다 견디는 시간이 더 길답니다.”

운동은 어떤 걸 하느냐보다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핵심. 이진산 교수는 “약간 땀이 날 정도로 40~60분, 일주일에 4~5번 이상 하는 것을 권장한다”며 “걷기가 무난하지만 관절이 좋지 않은 분들은 아쿠아로빅 같은 수중운동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진산 교수는 “치매환자들이 돌발행동을 보일 때 다그치는 건 가장 좋지 않다”며 “치매는 가족들의 인내심과 이해가 필요한 병”이라고 조언했다.

■일방적인 설명보단 속얘기 들어주는 데 집중

이진산 교수는 이 많은 치매정보를 모두 설명하기보다는 우선 환자와 보호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 집중한다고 했다.

“환자와 보호자의 얘기들은 의사가 어떤 치료가 필요할지 판단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시간은 한정돼 있어도 진료시간만큼은 환자와 보호자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최대한 할 수 있게끔 시간을 열어준답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속얘기를 자세히 들으려면 마음을 여는 것도 분명 필요할 터. 이진산 교수가 진료실에 들어서는 모든 환자, 보호자들과 악수하는 일을 빼놓지 않는 이유다.

■연구의 끈도 ‘꽉’…혈액기반 치매 진단 기대

이진산 교수는 진료와 더불어 연구에도 주력하는 의사다.

가장 최근인 2017년에는 경도인지장애와 치매를 앓는 환자들에서 ‘대각선 귓불주름’이 정상인보다 더 많이 관찰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혈액을 기반으로 알츠하이머병 치매를 진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는 뇌 MRI와 신경심리검사, 여러 신경학적검진 등을 통해 치매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진단기술이 개발돼 PET CT를 통해 단번에 알츠하이머병 치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게 됐지만 너무 고가여서 환자들의 부담이 큽니다. 하지만 혈액검사가 PET CT만큼의 정확성을 지닌 치매 진단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면 환자들이 훨씬 부담 없이 간편하게 치매 진단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날을 목표로 지금 열심히 땀방울을 쏟고 있답니다.”

■환자+가족+의료진 힘 합쳐야

부모님의 치매를 걱정하는 많은 자녀들이 이번 설날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물었더니 이진산 교수는 “부모님 옆에 찰싹 달라붙으라”는 귀에 쏙 들어오는 조언을 건넸다.

“일단 자주 찾아봬야 부모님의 이상을 빨리 알 수 있는데 현실적으론 어렵잖아요. 그럼 이번 명절 때만이라도 같이 요리도 해보고 쇼핑도 다녀보고 TV를 보면서 대화를 많이 나눠보세요. 부모님이 조리기구나 세탁기 등을 사용하는 게 서툴러지지 않았는지, 잘 알던 길도 헤매진 않는지, 휴대폰을 잘 사용하는지 등 일상의 소소한 행동들만 유심히 살펴봐도 치매 의심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또 언제 기회가 닿을지 몰라 개인적인 고민도 살짝 털어놨다. 할머니가 치매와 더불어 우울증이 심한 편이라고 했더니 “치매는 우울증과 동반돼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면서 “우울증이 너무 심하면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꼭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자꾸 웃게 해드리는 것도 좋은데 최근에는 재밌는 유튜브들이 대세잖아요. 아직 휴대폰을 사용하실 줄 안다면 유튜브도 보여드리고 오타가 나더라도 예전처럼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손을 자주 움직이시게 하세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치매는 싹 낫긴 어려워도 노력에 따라 좋아지는 분도 분명히 계시다는 겁니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함께 떠나는 희망 여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